닥치고 부자증세! 닥치고 기본소득!


최근 KBL 저득점 수비농구가 대세인 것에 대한 개인적 고찰... by AlexMahone



새해 들어 프로농구판에선 저득점 수비농구가 대세인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 2012년 1월 11일, 미리보는 챔프전이라 할 수 있는

원주 동부 프로미안양 인삼공사와의 농구경기에서

이번 시즌 가장 화려한 토종 선수들을 보유하고, 

용병도 수비형 센터가 아닌 

공격형 포워드인 로드니 화이트 선수가 있는

안양 인삼공사가 KBL 사상 최소득점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달성하면서 더욱 불거졌다.



2002~2003 시즌 김주성 선수가 데뷔하면서 부터 원주의 농구는 

과거 윌리포드, 해리스, 정인교, 주희정, 허재 등이 이끌던 화려한 공격농구에서

180도 뒤바뀐 수비 중심의 농구로 첫 챔피언 타이틀을 이끌어냈다.
(물론 당시 TG가 우승할 때 잭슨 선수의 화려한 3점슛이 있었지만, 사실 경기를 보면 이는 이판사판성의 슛이었다.)

그 이후 동부는 계속 KBL의 강자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동부의 수비농구가 재미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작금처럼 크게 공론화 되지는 않았다.

이는 K-리그와 대비된다.

2011 시즌 K-리그는 전북 현대의 "닥공" 축구가 흥행을 주도했다. 

K-리그에 시큰둥 했던 사람들이 닥공축구에 열광하며 K-리그에 관심을 보였다.

반면 원주 동부 프로미의 농구는 "닥수"(닥치고 수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KBL의 저득점 수비농구의 문제가 원주 동부 프로미만의 문제가 할 수는 없다.


예전 KBL을 살펴보면 화려한 공격농구를 하는 팀이 많았다.

이-조-추 트리오와 찰스 민랜드의 전주 KCC 이지스

김승현을 중심으로 네이트 존슨, 그 이후 피트 마이클의 대구 오리온스

강혁, 이규섭, 서장훈, 네이트 존슨을 앞세운 서울 삼성 썬더스

그리고 KBL 사상 최고의 공격력과 팬 서비스를 앞세운 단테 존스의 안양 인삼공사 카이츠(과거 SBS 시절 포함)가 있었다.

그러나 2011~2012 시즌에는 위에 열거된 팀 처럼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을 보기 힘들다.

이상민과 조성원은 은퇴했고

민랜드, 네이트 존슨, 단테 존스, 핏마는 사실상 한국농구무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김승현, 서장훈, 이규섭, 강혁, 추승균 등은 세월의 흐름 앞에 예전 같은 공격력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들을 대체해야할 신인과 용병이 등장해야 하는데...

용병의 경우는 자유계약제에서 드래프트제도로 다시 회귀하면서 용병들의 수준이 사실상 하락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 시즌부터 다시 자유계약제로 변경했지만

2명보유에서 1명 보유로 바뀌면서 용병들의 체력적 부담이 더 해졌다.


그럼 국내 선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과거 농구대잔치 출신의 한국 농구 전성기를 이끌던 황금세대들이 대부분 은퇴한 이후

이들을 대신할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허재, 강동희, 김승현, 이상민,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같은 선수들의 후계자가 마땅치 않다.


이는 비단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농구가 시행되면서 키가 큰 선수들은 무조건 용병 수비가 가능한 몸빵형으로 육성을 한다.
(물론 김종학, 이현호, 송창무, 백인선.. 그리고 이창수 같이 수비형 선수로 성공한 토종 빅맨들도 있다.)

하지만 이한권, 이현준, 정훈 등 비록 키가 195가 넘는 장신임에도 가드 역할이 더 어울림에도

상대 토종 빅맨이나 용병을 마크하는 수비형으로 기용하는 현실이 그렇다.
(이현준 선수 같은 경우는 KCC시절 가드포지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신선우 감독의 토털 바스켓의 숨은 핵심이었다.)

특히나 정훈 선수 같은 경우는 정말 아쉬운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비단 빅맨들 뿐 아니라

중고교시절 선수들에게 개인기 지양, 패스 플레이 중심 패턴 공격 지향 농구를 가르침으로서

현재의 젊은 토종 선수들의 개인기가 하락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최근 국제대회에서 수비시 몸싸움에 관대한 것을 KBL룰에도 어느 정도 적용한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결론은.. 현재 프로농구의 저득점 수비농구가 원주 동부 프로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몸싸움에 어느 정도 관대한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현 KBL 제도와 그에 맞춰 선수들을 육성하는 아마추어 농구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수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서상 선수들이 중고교 시절에 감독 또는 코치에 맞서 개인기를 주장하기 힘든 현실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수들은 시즌을 거듭할 수록 기량이 향상된다.

대표적으로 추승균과 김승현을 들 수 있겠다.

추승균의 경우 대전현대 시절엔 자유투 라인에선 고감도 2점슈터였지만 3점슛이 약했었다.

그러나 KCC 이지스 시절부터는 3점슛도 정확해졌다. 

그리고 추승균 하면 자유투였다. 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자유투가 백발백중은 아니었다.

97-98 챔프 결정전 시절(허재가 당시 오른손 붕대투혼을 발휘하던) 추승균은 중요한 순간 자유투를 많이 놓쳤다.

그러나 이후 자유투가 더욱 정확해졌다. 또한 당시 펄펄 날라다니던 챔프전 MVP허재를 수비해서인지 수비또한 최고가 되었다.

김승현의 경우 신인 시절(2001-2002) 감각적이고 한 템포 빠른 어시스트, 빠른 드리블로 리그를 지배했지만 이에 비해 3점슛 능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 3점슛 정확성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플로터를 장착하여 리그를 재패했다. 


그러므로 현재 프로선수들과 미래를 꿈꾸는 중고교 대학 농구선수들은 더욱 부지런히 개인기를 연마해야 할 것이다.

한국농구의 전설인 이충희, 허재와 같은 선수들을 그저 존경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지독한 훈련까지 따라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들의 노력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하는 바이다.


p.s.  2005-2006 시즌으로 기억한다.

김주성의 원주 동부(정규리그 3위)와 김승현의 대구 오리온스(정규리그 6위)가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당시 대부분의 예상은 김주성의 동부가 4강에 올라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김승현과 피트 마이클이 이끄는 대구 오리온스가 수비 농구의 원주 동부를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다.

동부의 입장에서 패배의 변을 말하자면, 시즌 막판 용병 선수가 부상으로 대체 선수와의 호흡 문제등이 있었다.

그러나 김승현과 핏마가 이끄는 오리온스의 창이 동부의 방패를 뚫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후 KBL에선 더욱 수비농구가 자리잡는다.

원주 동부의 수비농구를 진두지휘했던 전창진 감독이 부산 KT매직윙스로 떠나면서 수비농구는 KT매직윙스로 전파된다.

그리고 전창진 감독의 KT는 비록 챔프반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최근 KBL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T의 첫 챔프 타이틀을 가로막은 것은 전태풍과 하승진의 KCC였다.

전태풍의 현란한 개인기와 하승진의 가공할 높이를 앞세운 KCC의 창도 강력했지만 KCC팬이 아닌 농구팬들을 매료시킬 화려함이 살짝 부족했다.


그리고 어느덧 겨울 스포츠의 최고 흥행이 KBL에서 남자배구쪽으로 기울어졌다.

원년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팬으로서 KBL이 실력과 흥행 모두 발전하기를 바란다.
(아.. 이거 노인네 인증인데 ;;;)

덧글

  • 프랑스혁명군 2012/01/14 09:28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솥까발 요즘 프로 선수들은 전설의 선수들보다 기본기가 부족한건 사실이고,
    (다만, 자기 관리는 요즘 선수들이 더 뛰어 나다는 말이..^^;;)
    노마크 찬스에서도 덩크를 실패하는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가 있다니 참..
    그것도 어느 전설의 선수가 감독이 되어 맡은 팀에서의 선수들.

    그나저나 KBL.
    프로농구를 치르기 위해선 KBL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사실은 괴상한 제도 도입과 더불어 항상 시즌내내 외국인 선수 문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들도 저득점 농구에 충분히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는 챔피언 결승전 잠실 중립 경기를 폐지했다고 하네요.ㅉㅉ

    네이버의 어떤 허동만빠 블로그에선 2001 ~ 2002 시즌 치르기 전 당시,
    이현준 <-> 최명도의 트레이드는 KCC의 실패라고 하던데..
    무슨 기준으로 실패라 보는지 참..;; 이현준 선수는 말씀하신대로 충분히 토털농구에 기여했고,
    앞으로 그 당시 루키였던 허중, 성준모와 더불어 KCC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선수로 여겼었는데..
    결국 FA 전희철의 영입으로 인하여 보상 선수로 이현준을 내 줬던 것 뿐이죠.

    앞으로 다시 KBL 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휴...

    P.S. 당시 2005년, 2009년 신인 드랩때 자기네 국내 선수들을 1라운드 상위에서 안 뽑아 준다고,
    순간의 감정 폭발로 자리를 떠서 드랩을 거절하려 했던 경희대 감독 최부영씨를 비롯한 몇몇 국내 선수들.
    묻고 싶네요. 당신들의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했으며, 지금도 선수 생명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저 역시 KBL의 행정 능력이 맘에 들지 않지만, 당신들 역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AlexMahone 2012/01/14 23:09 #

    그나저나 오늘 장판과 스크 경기를 보노라니...

    이젠 추사마도 은퇴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괜히 제가 다 슬퍼지더라구요...
  • 아리엘마스터 2012/01/20 15:32 #

    농구 대잔치...어렸을적에 TV로 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으아 도대체 몇년전인지 기억도 안납니다[...]
  • AlexMahone 2012/01/20 21:04 #

    농구대잔치가 1983년도엔가 시작했을 겁니다.

    호오.. 그 때면.. 아리엘마스터님.. 아직 아버님 몸속에? ㅋ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최근 포토로그